전환금융 : 탄소집약적 산업의 전환을 꿈꾸며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24기 이지혜
[기후 소송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
자료 1.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의 전경
출처: 한겨례
지난 8월 29일, 한국에서 아시아 최초의 기후 소송 결과가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한국 정부의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8조 1항이 헌법에 불합치하다고 판결했다. 2050년 탄소중립 선언에도 불구하고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하지 않은 것은 과소보호금지 원칙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에 정부와 국회는 2026년 2월 28일까지 보다 강화된 기후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이와 같은 기후 소송이 전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시민들은 국가뿐만 아니라 기업을 상대로 기후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의 연구에 따르면 기업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기후 소송이 제기되거나 법원 판결이 나오면 해당 기업의 주가가 평균 0.41% 감소한다고 밝혔다. 특히 글로벌 메이저 에너지기업 등 탄소 배출이 많은 기업들의 기대 가치는 새로운 기후 소송이 제기됐을 때 0.57%, 패소 판결 등 기업에 불리한 판결이 나왔을 때 1.5% 줄었다. 이처럼 기업 경영의 친환경 여부가 투자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제는 탄소집약적 사업을 실시하는 기업도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특히나 철강,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조선을 주요 산업으로 갖는 한국의 경우, 이와 같은 저탄소 전환이 시급한 상태이다.
[전환금융의 등장]
친환경 사업을 시행하는 기업의 경우 EU 택소노미, K 택소노미와 같은 기준에 따라 ‘녹색금융’을 통해 자금을 조달받을 수 있다. 하지만 녹색금융은 자금 용도가 친환경 녹색 프로젝트이어야만 발행되기 때문에 고탄소 산업은 녹색금융을 통해 저탄소 전환 자금을 지원받기 어렵다.
자료 2. 단기·중기·장기적 관점에서 전환금융의 역할
출처: EU 집행위원회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금융이 바로 ‘전환금융’이다. 전환금융은 산업의 본래 특성상 저탄소 전환이 매우 어려운 고탄소 산업의 탄소 저감 및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위해 고안된 금융으로, 자금의 사용처가 녹색활동에만 국한되지 않고 기업의 탈탄소 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모든 프로젝트에 대해 사용될 수 있다. 즉, 전환금융은 프로젝트 자체의 녹색 여부보다 발행기업이 녹색화되고 있는지, 저탄소 경로를 따라 친환경 녹색 기업으로 전환하고 있는지에 중점을 둔다. 예를 들어 전력회사가 기존의 석탄 발전설비를 고효율 천연가스 발전설비로 대체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녹색활동이 아니므로 녹색금융을 발급받을 수는 없으나, 탄소중립 달성에 필요한 과도기적 활동으로 인정될 수 있으므로 전환금융을 통한 자금조달은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전환금융은 기존의 과거지향적 분류법에 비해 미래지향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처럼 전환금융은 지금 당장 기업의 탄소 배출량이 얼마나 되는가를 따지기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얼마만큼 감축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전환금융 지원을 받고자 하는 기업(발행기업)은 저탄소 전환 과정의 실현가능성과 친환경성을 입증해야 한다.
자료 3. ICMA에서 권고하는 전환금융 발행기관의 핵심 공시 요소
출처: 자본시장연구원
일반적으로 발행기업은 국제자본시장연맹(International Capital Market Association: ICMA)이 발간한 ‘기후전환금융 핸드북’에 제시된 4가지 사항을 공시해 저탄소 전환을 입증할 수 있으며, 세부 공시 사항은 상단 표에 나타난 바와 같다.
이처럼 단순히 고탄소 기업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는 것이 아니라, 주주가 긴 호흡을 갖고 고탄소 배출 기업들과 주주 참여를 통해 탈탄소 이행을 유도하는 전환금융은 주주가치 증대에도 부합한다. 또한 그동안 주주들이 고탄소 기업군에 대해 채택한 투자 철회 전략은 기업의 행동 변화 유도와 실효적인 탄소 감축에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는 전환금융을 통해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해외 전환금융 시장 동향]
1. EU
EU는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위해 유럽 그린딜을 발표하고, 관련 정책과 제도들을 선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나 금융 부문에서 다양한 전략과 계획, 상품을 내놓고 있는데, 그 흐름은 아래 그림과 같다.
자료 4. EU의 기후행동과 지속가능금융 로드맵
출처: KDB 산업은행
2023년 6월 13일 EU 집행위원회는 새로운 지속가능 금융 패키지를 발표했는데, 해당 패키지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전환금융(Transition Finance) 권고안이다. EU는 권고안에서 지속 가능금융을 이미 친환경에 해당하는 투자인 녹색금융과 일정 기간에 거쳐 환경 성과 개선을 위해 전환하는 곳에 자금을 조달하는 전환금융으로 명시하여 탄소 중립 달성 과정에서 전환금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U 집행위원회가 제시한 전환(Transition)과 전환금융(Transition Finance)의 정의는 아래 사진에 나타난 바와 같다.
자료 5. 전환(Transition) 및 전환금융(Transition Finance)의 정의
출처: 삼성투자증권
EU 집행위원회는 2024년부터 기업 지속 가능성 보고 지침(CSRD)의 기후변화 관련 보고 항목에도 가스, 화석 발전과 연관된 기업의 경우 전환계획을 공시하도록 했으며, EU 택소노미 적합(Aligned) CAPEX 계획을 지표로 활용할 것을 명시했다. 이때 EU 택소노미 적합(Aligned) CAPEX는 1) 전환계획에 따른 CAPEX 계획을 동반하고 최대 5년(예외적으로 10년) 내에 EU 택소노미 적합 기준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거나 2) 탄소중립 기술 개발을 저해하지 않는 최적가용기술(Best Available Technology, BAT)에 대한 투자에 해당하면 인정된다.
지속가능 금융 패키지가 발표되고 1년이 지난 8월 29일, 유럽증권시장감독청(ESMA)은 2024년 2번째 반기 ‘트렌드, 위험 및 취약성에 대한 보고서(TRV Risk Monitor)’를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년 동안 전환 펀드가 총 2,700만 유로(약 400억 원)의 자금을 유치하는 성과를 보였다.
2. 일본
일본은 전체 전력 발전량 중 석탄과 천연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60% 이상으로 화석연료 의존도가 매우 높은 동시에 고탄소 산업의 비중이 높다. 따라서 일본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해당 산업군에서의 탄소 감축이 필수적임을 인지하고, 2020년 9월 기후금융의 3기둥 중 하나로 ‘전환’을 선정했다. 2021년부터는 이들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전환금융 정책과 프레임워크를 발표하며 기준을 정립 및 고도화했다. 일본 정부가 추진한 정책의 이름과 주요 내용은 아래 표에 나타난 바와 같다.
자료 6. 일본 전환금융 관련 정책 동향
출처: 우리금융 경영연구소, 하나증권
이처럼 일찍이 범국가적 차원에서 전환금융 관련 인프라를 구축해 온 일본 정부는 2024년 2월 14일 기후 전환금융인 GX 채권을 발행했는데, 이는 세계 최초로 국가 발행한 전환금융에 해당한다. GX 채권은 앞으로 10년 간 20조 엔(약 178조 원)의 규모로 발행될 예정이며, 이와 같은 일본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에 세계 전환 채권의 대부분은 일본에서 발행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행보는 산업구조가 유사한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 전환금융 시장 동향]
국내에도 고탄소 산업군에 대한 지원이 존재한다. 환경부는 2022년부터 고탄소 배출업종의 저탄소 전환 비용을 일부 지원하는 ‘녹색정책금융 활성화 사업’을 운영 중이며, 민간 금융회사 중 신한금융그룹이 단기 적용 방안과 장기 적용 방안으로 구분해 투트랙 금융지원 프로세스를 전개하고 있다. 국내 전환금융 수요 역시 2030년까지 1,000조 원 규모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정립한 전환금융 제도와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 경영의 친환경성 여부가 존속을 가르는 현시점에서, 고탄소 배출 산업군이 발달한 한국은 발 빠르게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을 정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앞서 언급한 일본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정부 주도하에 한국형 전환금융의 프레임워크를 갖추어야 기업들도 장기적인 로드맵을 마련하고 단계적인 탈탄소화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기업에서 나아가 국가의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환금융의 한계와 방향]
고탄소배출 산업군에 금융 지원을 통해 저탄소 전환을 돕는 전환금융에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 전환금융은 미래 지향적인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국가와 산업, 국내외 기술개발 동향에 따라 변화하는 기업 전환전략의 타당성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또한 미래에 기술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거나 기업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않을 경우 온실가스 배출이 장기간 지속되는 고정화 문제가 발생하여 결국 그린워싱의 우려가 존재한다. 또한 현재 책정된 분야별 로드맵은 기본적으로 대기업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에 대한 구조가 정비돼 있지 않아 공급망 전체의 저탄소 전환을 추진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더불어 기업의 탄소중립화는 매출 증가로 이어진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전환금융은 신용 리스크 관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또한 온실가스 배출감소가 어려운 산업일수록 자금조달이 많이 필요하고, 감축 속도도 느려지기 때문에 전환금융의 확대는 금융기관의 배출량 감축을 지연시킬 수 있다.
따라서 각국 정부는 분야별 로드맵의 실용성과 신뢰성을 향상하고, 전환금융을 실시하는 금융기관을 지원해야 한다. 또한 외부평가비용 조성제도를 확충하고 모범사례 및 기업 인증제도 등을 통해 기업의 전환금융 활용을 촉진해야 한다. 나아가 외부평가 취득이 어려운 중소기업들을 위한 제도를 정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전환금융에 대한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기사 더 알아보기
1. "K-택소노미와 녹색채권, 이제 시작이다!"24기 변지원,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4290
2. "탄소중립 속 변화하는 석유 가스 회사", 24기 김하은, 이지혜,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4488
참고문헌
[기후 소송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
1) 김민욱, “”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대책 마련하라” 탄소중립기본법 헌법 불합치 결정”, MBC NEWS, 2024.08.29., https://news.imbc.com/replay/2024/nwdesk/article/6631905_36515.html
2) 김용만, “기후소송, 이제 기업들이 응답할 때다”, 오마이뉴스, 2024.05.07.,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28078
3) 장상유, “기후소송 당하면 주가 떨어진다, 영국 연구진 “기업들 재무위험 대비해야””, 비즈니스 포스트, 2023.05.23., https://www.businesspost.co.kr/BP?command=article_view&num=316084
[전환금융의 등장]
1) 박혜진, “전환채권의 글로벌 현황과 국내 시사점”, 자본시장포커스, 2023-17, 2-3, 2023.08.21.
2) 이형기, 현석, “전환금융(Transition Finance)의 도입 현황 및 향후 과제 : 일본과 유럽의 사례를 중심으로”, 무역금융보험연구, 24(2), 39-55, 2023.
[해외 전환금융 시장 동향]
1. EU
1) 손서원, “EU는 전환금융도 지속가능 금융으로 정의”, 삼성증권, 4-5, 2023.06.19.
2) 유인영, “ESMA, 이름에 ‘전환’ 들어간 EU 펀드 136개...2년간 400억원 순유입”, IMPACT ON, 2024.09.10., https://www.impacton.net/news/articleView.html?idxno=12509
3) 장명화, “EU의 지속가능금융 정책 추진동향과 시사점”, 산은조사월보, 798, 2022.05.
2. 일본
1) 김상만, “전환금융”, 하나증권 ONE ESG, 8, 12-16, 2024.03.28.
2) 박혜진, “전환채권의 글로벌 현황과 국내 시사점”, 자본시장포커스, 2023-17, 2-3, 2023.08.21.
3) 송준호, “일본, ETS 보증 첫 기후전환채권 발행...英은행 바클레이즈, 전환금융 프레임워크 발표”, IMPACT ON, 2024.02.14., https://www.impacton.net/news/articleView.html?idxno=10876
4) 이형기, 현석, “전환금융(Transition Finance)의 도입 현황 및 향후 과제 : 일본과 유럽의 사례를 중심으로”, 무역금융보험연구, 24(2), 39-55, 2023.
[국내 전환금융 시장 동향]
1) 박종훈, “녹색금융 한계 보완할 전환금융, ‘K-프레임’ 정립 서둘러야”, 한스경제, 2024.07.03., https://www.hansbiz.co.kr/news/articleView.html?idxno=700967
2) 윤원섭, “’전환금융’에 들썩이는 금융권...韓 2030년 수요 1000조원 예상”, 그리니엄, 2024.08.07., https://greenium.kr/news/55219/
[전환금융의 한계와 방향]
1) 이형기, 현석, “전환금융(Transition Finance)의 도입 현황 및 향후 과제 : 일본과 유럽의 사례를 중심으로”, 무역금융보험연구, 24(2), 39-5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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