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 에어컨, 모기 없다던 ‘3무 도시’ 태백, 이제는 폭염주의보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26기 이서진
[‘3무 도시’ 태백의 폭염]
여름이 되면 기온이 30도는 가뿐히 넘는 오늘날, 에어컨은 필수 가전제품으로 뽑힌다. 이제는 ‘너희 집에 에어컨 있어?’라는 질문보다, ‘너희 집 언제부터 에어컨 틀어?’라는 질문이 당연해졌다. 그러나 우리 지역은 에어컨이 필요 없다고 당당히 선포한 지역이 있다. 바로 태백이다. 태백은 열대야, 에어컨, 모기가 없는 ‘3무(無) 도시’를 슬로건을 내세워 지역을 홍보한다. 실제로 태백은 폭염 특보가 내려지는 일이 드물다. 상대적으로 기온이 낮기 때문이다. 태백은 한반도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태백산맥의 중추에 자리하고 있다. 산맥의 모산(母山)인 태백산은 해발 1,567m에 달하며, 태백시 자체도 해발 1,225m로 국내 최고지대(最高地帶)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온도는 낮아진다. 대략 높이가 1㎞ 높아질 때마다 기온은 5~6도가량 하강하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태백은 다른 도시들이 33~35도 사이의 폭염에 시달릴 때 비교적 선선한 기후를 즐기는 셈이다. 이러한 고산지대 기후의 이점을 활용해 ‘선선 페스티벌’을 매년 7~8월에 개최하기도 한다.
[자료1. 역대 가장 더운 태백시의 여름]
출처: 중앙일보
그러나 올여름은 달랐다. 지난 8월 2일 최고 기온이 33.8도까지 육박하며, 폭염주의보를 맞이했다. 일회성 우연으로 취급하기에는 그 심각성이 높았다. 지난해인 2023년과 올해 7~8월 태백시의 일평균 기온을 비교했을 때, 하루 평균 기온이 25도를 넘겼던 날이 지난해는 6일이었지만 올해는 16일로 3배 가까이 늘었고, 특히 7월 24일부터 8월 5일까지 13일 연속 일 평균 기온이 25도를 웃돌았다. 심지어 1985년 기상 관측을 시작한 지 40년 만에 가장 높은 7월 기온(23.9도)을 기록하기까지 했다. 그동안 더위를 잘 느끼지 못했던 태백 시민들도 입을 모아 더위를 호소할 정도였다.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을 결국 태백시조차 피하지 못했다.
[폭염으로 인한 태백 농민의 피해]
폭염의 피해를 직격으로 맞은 이들은 태백의 농민들이다. 높은 기온으로 인해 배추들이 곳곳에서 노랗게 말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해발고도 1,200m가 넘는 강원도 태백시 매봉산 인근에는 40만 평에 달하는 국내 최대의 고랭지 배추밭이 있다. 한국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경작지로 고랭지의 이점을 누리는 곳이지만, 농민들은 8월 출하기를 앞두고 걱정에 휩싸여 있다. 기후변화로 매해 출하량이 줄어 작년에는 30%에 불과했고 올해는 더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덕교 고랭지채소강원도연합회장은 “올해 장마 기간이 길었다가 폭염이 극심해지면서 전통적인 고랭지 지역인 태백, 정선 등의 배추와 무 작황이 심각하게 악화된 상태”며 “한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하면 사람이 감기에 걸리듯 배추에는 이파리가 노랗게 변하거나 붉은 반점이 생기는 바이러스가 퍼지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확산해 손도 못 댈 정도”라 말하며 배추 작황의 심각성을 우려했다. 농작물 자연재해 보험이 있기는 하지만 피해가 너무 커서 고랭지 농업이 몇 년 내로 고사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까지도 나온다. 태백시 관계자는 “폭염에 초점을 맞춘 지원책은 아직 없고, 현재 병해충 문제가 복합적으로 있는 상황이라 시에서는 방재를 돕는 측면에서 농가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료2. 주요 김장 재료 생산량 전망]
출처: 서울신문
다른 시기도 아닌 여름에 어려움이 생겼다는 점에서 폭염이 만들어낸 고랭지 배추의 문제는 부차적으로 커진다. 여름 배추 작황은 추석을 지나 김장철이 시작되는 늦가을 배추 생산량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실제로 8월 5일 배추 도매가격은 10㎏에 1만 5,580원으로 한 달 전보다 41.0%나 뛰었다. 올해처럼 고랭지 지역을 비롯한 배추밭이 폭염 피해를 보았던 2018년 당시, 배추 한 포기는 1만 6,000원을 기록했다. 이처럼 한여름 이상기후가 또다시 추석 명절과 김장철 물가까지 자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악화한 여름 배추 작황이 올 초 금(金)과일 파동으로 들썩이다가 가까스로 상승 폭이 둔화한 소비자물가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예측도 제기된다. 한 도시의 폭염 피해가 전국적으로 퍼지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폭염에 대한 태백시의 부족한 대처]
[자료3. 6년 사이 에어컨 실외기가 설치된 태백의 아파트]
출처: 중앙일보
배추도 견디지 못하는 무더위를 일반 시민 역시 견딜 수 있을 리 없다. 그동안 선선한 태백 날씨에 익숙해져 있던 시민들도 갑작스러운 기온 상승에 새로운 대처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에어컨이다. ‘3무’ 중 하나였던 에어컨이 이제는 태백에서도 필수 가전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에어컨 설비 업체가 태백시의 가장 바쁜 직종이다. 11년째 에어컨 설치업을 하는 이영애(51) 씨는 “아침 8시부터 밤 8시까지, 주말도 없이 일하고 있다”고 말하며, “에어컨 업체가 많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수요가 폭등하자 외지 업자들까지 와서 한꺼번에 에어컨을 달아놓고 갔고, 그런 탓에 수리 문의도 끊임없이 몰려든다”고 밝혔다. 5~6년 전만 해도 오래된 아파트의 외부에 에어컨 실외기를 찾아보기 어렵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태백시 주민들도 “에어컨 없는 도시는 옛말”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내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장금옥(75) 씨는 “태백에 30년 살았는데, 3년 전에 에어컨을 달았다. 몇 년 전만 해도 에어컨 실외기가 보이는 집이 거의 없었는데, 3년 전부터는 많이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에어컨 설치 가정 수가 많아진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모든 가정이 에어컨을 필수로 구비할 수는 없다. 특히 독거노인이나 저소득가구의 경우 에어컨이 필요한 환경임에도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설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태백시는 전체 인구 3만 8,720명 중 노인이 1만 1,213명으로 고령화 비율이 약 29%인 초고령 도시다. 폭염에 취약한 노인 인구가 많은데도 가정에서 에어컨이 설치되기 시작한 시기가 얼마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태백시가 신경 써야 할 취약점이다.
실제로 태백시는 폭염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을 위해 황지연못 공원, 장성 탄탄마당, 철암동 소공원 등 총 3곳에 어르신 임시 무더위쉼터를 조성, 8월 말까지 운영하기로 했다. 이로써 폭염 취약계층인 어르신의 안전과 온열질환 환자 발생을 예방하고자 했다. 어르신 무더위 쉼터에는 대형 파라솔, 냉장고, 대형 선풍기 등을 설치한다. 생수와 온열 질환 예방 용품 등을 지원할 방침이다. 쉼터 내 장기, 바둑 등 보드게임 세트도 준비해 어르신들이 무더위 쉼터에서 안전하고 즐거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태백시의 무더위쉼터는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그 수가 적다. 국민재난포털에 따르면, 태백시의 무더위쉼터는 총 15개에 불과하다. 태백시의 면적이 303.44㎢이고 인구수가 약 3만8000명이라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약 4만1000명으로 비슷한 인구수인 경기 연천군의 무더위쉼터는 71개로 태백시의 4배를 넘는다.
물론 태백시는 연천군에 비해 기온이 낮고 폭염 기간이 짧다. 그렇지만 무더위쉼터는 단발적으로 쓰이고 끝날 기관이 아닌 매년 여름마다 재사용될 장소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천군의 무더위쉼터 71개의 지표는 일반적으로 폭염을 맞이했을 때 태백시와 비슷한 인구수의 도시가 갖춰야 할 무더위쉼터의 개수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이야 아직 태백시가 15개로 버틸 수 있다고 하지만, 매년 폭염은 심화하며 장기화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머지않은 미래에 태백시는 현재의 연천군이 겪는 수준의 더위를 맞이하게 되고, 같은 수준의 폭염 대처를 준비해야 한다. 초고령 사회로 폭염 취약계층인 노인이 많다는 점과 고산지대로 폭염 대처 행정 체계와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태백시는 하루빨리 폭염 대처의 취약점을 보완해야 한다.
[더 이상 기후변화의 안전지대는 없다]
‘3무 도시’로 언제나 폭염주의보를 피해 가던 태백조차 폭염을 맞이했다. 기후변화는 속도는 다를지 언정 모두에게 찾아온다. 한 도시의 풍경을 통째로 바꿔 놓은 기온 상승조차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고랭지 배추가 김장 물가에까지 파동을 미치는 것처럼, 기후변화는 우리의 시야 안팎으로 영향을 미치며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에 대처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명확하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원인 탐색과 처치는 물론이고, 이미 발생한 기후 재난에 대처해야 한다. 태백시의 폭염 대처가 후자에 속한다. ‘아직 이르다’, ‘낭비다’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폭염은 해결과 대처에 하나같이 막대한 예산과 시간이 소요된다. 예를 들어, 폭염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서만도 각 행정구역의 구역 내 취약계층 시민 파악, 응급 대응 체계 확립, 지원 프로그램 설립이 필요하고 이에 따라 각각의 매뉴얼과 예산이 수반돼야 한다. 일회성 체계가 아닌 매년 재실행될 수 있는 체계를 확립하고 시행돼야 함을 태백시는 명심해야 한다. 더 이상 폭염은 남의 일이 아니다. 당장 내년을 위해서 해결해야 할 현재의 문제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기사 더 알아보기
1. "다가오는 美 대선, 앞으로의 미국 탄소 정책은?", 23기 진희윤,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4500
2. "기후 위기, 4대 지표로 읽는 미래", 25기 구윤서,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4433
참고문헌
[‘3무 도시’ 태백의 폭염]
1) 김응구, “전국 폭염·열대야 신음 속 에어컨 없이도 사는 이곳”, CNB저널, 2024.07.30., https://weekly.cnbnews.com/news/article.html?no=162468
2) 김인성, “열대야·폭염 없던 태백시마저... '무더위 쉼터' 개설”, MBC강원영동, 2024.08.09., 처https://www.mbceg.co.kr/post/117256
3) 정은혜, “'無에어컨 도시' 태백도 열받았다..."고랭지배추 전부 버릴 판"”, 중앙일보, 2024.08.05.,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8421
[폭염으로 인한 태백 농민의 피해]
1) 곽소영, “폭염 덮친 고랭지 배추… 걱정되는 김장 물가”, 서울신문, 2024.08.06., https://www.seoul.co.kr/news/economy/2024/08/06/20240806016006
[갑작스러운 폭염에 대한 태백시의 부족한 대처]
1) 김광희, “초고령사회 태백시에 태백요양병원 15일 개원”, 강원일보, 2024.02.13., https://kwnews.co.kr/page/view/2024021309163086492
2) 전명록, “태백시 어르신 임시 무더위 쉼터 조성”, 강원일보, 2024.08.08., https://kwnews.co.kr/page/view/2024080810593187802
3) 국민재난안전포털, https://m.safekorea.go.kr/idsiSFK/neo/main_m/res/htweaiList.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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