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여름은 더 뜨겁다: 옥외노동자들의 이야기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25기 손동찬
점점 더 뜨거워지는 여름, 더욱 위험해질 그들의 작업환경
올여름(6~8월)은 유독 후덥지근하게 느껴진다는 얘기가 많았다. 기온도 기온이지만 습도까지 더해져 체감온도가 높았다는 것이다.
이는 실제 수치로 입증됐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여름이 1994년과 2018년을 제치고 가장 더웠던 여름으로 기록됐다. 전국 평균기온과 열대야 일수 등이 역대 1위인 것으로 집계됐는데, 전국 평균기온은 25.6도로 평년(23.7도)보다 1.9도 높았고, 열대야 일수는 20.2일로 평년(6.5)의 3.1배에 달했다. 폭염일수도 비록 역대 1위는 아니지만 24.0일로 평년(10.6일)보다 2.3배 늘어 역대 3위를 기록했다.
[자료1. 올여름 전국 평균기온과 열대야 일수]
출처: 경향신문
기후변화에 따라 여름이 더 길어지고, 더 더워질 것이란 점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1세기 후반기(2081년~2100년)에 폭염일이 최대 70여 일이 될 정도로 폭염일수가 지속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국립기상과학원의 ‘2022년 남한상세 기후변화 전망보고서’)
점점 더 힘들어질 여름, 더위에 보다 많이 노출된 이들이 있다. 건설업과 물류업 등에 종사하는 옥외 노동자들이다. 뜨거운 햇빛과 높은 온도 및 습도는 이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때로는 사망에 이르게 한다. 대표적으로 온열 질환이 있다. 온열 질환은 열로 인해 발생하는 급성질환으로, 뜨거운 환경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두통, 어지러움, 근육경련, 의식저하 등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방치할 경우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대표적 온열 질환으로 열사병과 열 탈진이 있는데, 열사병의 경우 체온의 유지를 담당하는 중추가 기능을 상실하게 돼 체온이 상승한다. 심부 체온이 40도를 넘으면 중추신경계 이상, 의식 변화, 혼수상태 증상 등이 나타난다. 무겁거나 위험한 물체를 운반하고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건설현장 및 물류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에 직간접적 위험을 주게 된다. 단적인 예로 지난 2022년 7월, 카이스트 건물 신축 공사 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던 근로자가 열사병으로 인해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출동한 구급대원이 심폐소생을 하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지고 말았다. 근로복지공단 자료(‘온열 질환 산업재해 승인 현황’)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폭염에 따른 온열 질환 발생으로 산업재해가 승인된 건수는 총 147건이었고 이 중 사망사고는 22건에 달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 4월 ‘기후변화 속 직장 내 안전 및 건강 대책 방안’ 보고서를 통해 폭염에 노출된 근로자 규모가 크고, 폭염일수 증가 추세에 따라 해당 규모가 더욱 커질 만큼 이로 인한 건강 피해 및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대책 강화를 요구했다.
[자료2. 더위와 싸우고 있는 건설현장 노동자]
출처: 경향신문
‘권고’에서 나아가지 못하는 현행 보호책
기후변화에 따라 폭염일수 증가 등 옥외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이 더욱 위험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그에 따라 대응책 마련 및 강화가 요구되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대응이나 보호가 여러 차원에서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관련 입법 논의는 오랜 기간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의 고객응대 근로자 보호조치가 시행됨에 따라, 고객님과의 통화내용은 녹음이 되며…” 우리에게 상당히 익숙한 이 멘트. 콜센터 같은 기관에 전화했을 경우 들을 수 있는데, 멘트에서 나타나듯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에 따른 근로자 보호조치이다. 여름철 옥외노동자들의 근로환경 안전 역시 해당 법률에 따라 보호 받는데,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첫째, 법조문의 명확성 및 강제성 부족이다. 산안법 제51조와 52조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사업주와 근로자가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한을 명시하고 있으며, 산안법의 하위법령인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이하 ‘규칙’) 제566조는 근로자가 ‘고열ㆍ한랭ㆍ다습 작업을 하는 경우’나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에서 작업하여 열사병 등의 질병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사업주가 ‘적절하게 휴식하도록 하는 등 근로자 건강장해를 예방하는데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폭염이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지 기준이 명확치 못하며, 규칙에 따른 ‘적절한 조치’ 역시 ‘그늘이 있는 휴게시설’에서 ‘휴식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 외의 구체적인 내용이 제시되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적절한 조치’의 경우 고용노동부가 배포하는 가이드라인 상 권고사항들이 있는데, 이는 말 그대로 ‘권고’인 만큼 관련 조치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처벌받지 않는다. 때문에 기온이 특정 수준 이상일 경우 일정 시간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권고사항이나, 냉방장치(에어컨) 설치와 같은 보다 적극적인 조치는 이행을 강제할 근거가 미비한 상태다.
[자료3.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
출처: 뉴시스
뿐만 아니라 ‘고열작업’은 작업 장비가 고열을 발생시키는 경우에만 인정되는 만큼 건설 및 물류 노동자들은 아무리 기온이나 체감온도가 높더라도 상기 조문에 의거한 보호를 받지 못한다.
[자료4. 폭염기 건설현장 옥외작업 '고열작업' 인정 촉구 기자회견]
출처: KBS
둘째, 고용노동부 등 행정기관의 법 집행 관리감독 부족이다. 현장전문가들은 고용노동부 뿐 아니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도 현장을 관리감독할 권한과 인력이 있음에도 효율적인 관리감독이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상기한 명확한 기준의 부재 역시 관리감독의 어려움을 증가시킨다.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노동자)의 80.6%가 한낮에도 별도의 작업 중단 조치가 없었다고 답했으며, 81.5%는 1시간마다 10분에서 15분씩 규칙적인 휴식 시간이 주어져야 함에도 이를 보장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 22대 국회에 산안법 개정안 등 여러 개정안들이 심의중이다. 하지만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21대 국회에서도 유사 개정안들이 발의됐으나 임기 만료에 따라 자동 폐기된 만큼, 관련 논의가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해외의 경우, 명확성과 강제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조치 시행 중
그렇다면 해외의 경우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을까? 상기한 법조문의 명확성과 강제성을 비롯해 우리가 참고할 만한 내용이 있을까? 아래에서는 관련해 간략하게 살펴본다.
상기한 ILO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2012년부터 행정조치 시행을 통해 관련 산재를 예방하고 있다. 해당 조치는 폭염일 경우 근로시간을 적절히 조정하고 교대제를 운영하는 등 근로강도를 낮춰야 하는 의무를 사업주에게 부과하고 있다. 특히 옥외노동의 경우 기온이 40도 이상일 경우 전일 중단, 37도에서 40도 사이일 경우 6시간 이상 작업 금지 및 기온이 가장 높은 시간대에 3시간 이상 작업 금지 등 구체적인 금지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옥외노동에 대해서는 아니지만 실내작업장 온도가 26도를 넘을 시 환기시스템 가동, 교대제 운영, 복장규정 완화, 선풍기 가동 등 구체적 조치가 시행돼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바레인의 경우 노동부(the Ministry of Labour) 프로토콜에 따라 매해 7월 1일부터 8월 31일 기간 내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는 옥외노동이 금지돼 있고, 쿠웨이트,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유사 조치가 시행되고 있다. 이외에도 해당 보고서는 관련 조치의 강화로 이어진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는데 여기엔 노동계의 집단협상, 인식 제고 캠페인, 범정부 위원회 설치 등이 포함된다. 해당 보고서는 결론을 통해 관련 정책 수립 및 집행 과정에서의 사회적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업주와 노동자들이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은 만큼 이들과의 소통과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폭염ㆍ한파 건강장해 예방조치 개선방안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31개국의 폭염 관련 규정을 조사했다. 이때 24개국이 강제성을 가진 작업장 내 대응 조치 규정을 보유하고 있었고 16개국은 구체적인 온도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연구팀은 “실내의 경우 온도 기준을 규정하는 것이 추세고, 폭염에 관한 관리조치는 현행 물, 그늘(휴게시설), 휴식을 포함해 교육, 건강감시, 응급처치 등도 추가로 수행되고 있다”며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정부의 적극성 발휘와 노정관계 회복을 바라본다
정리해보자. 올여름은 전국 평균기온과 열대야 일수에서 역대 1위, 폭염일수에서 역대 3위를 기록했고, 기후변화에 따라 앞으로의 여름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 같은 더위에 온전히 노출된 옥외노동자들에게 더욱 그렇다. 이들은 열사병 등 온열 질환에 취약한 작업환경에 놓여있다. 산안법 등 관련 보호책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관련 해외사례를 검토해 본 결과, 노동자의 건강과 권익 보호를 위해 우선 관련 법조문의 명확성과 강제성을 강화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음을 확인했으며, 이외에도 집단협상, 캠페인 집행, 특별기구 설치 등 다양한 방법을 강구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우리 정부가 관련해 보다 적극적인 시도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 이유다. 물론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에서의 논의가 최우선이겠지만, 또다른 측면에서 역시 관련 논의는 중요하고, 그렇기에 필요성이 인정된다 할 것이다. ESG의 중요성이 나날이 부상하고 있는 오늘날 온열 질환으로 인한 산업재해는 기업의 가치와 경쟁력에 중대한 손실을 입히기 때문이다. 당장 거의 모든 국내기업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시 활용하는 기준인 GRI만 놓고 보더라도, 조항 403에서 ‘산업안전보건’을 다루고 있으며 403-9와 403-10은 ‘재해율’과 ‘업무 관련 질병’이다. 위반 시 기업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역시 열사병을 직업성 질병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앞서 언급한 2022년 7월 카이스트에서의 사망사건의 경우 이에 따라 원청 대표이사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가 돼있는 상황이다. 즉, 당위적, 규범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차원에서도 관련 보호책 강화가 요구되는 것이다.
관련해 우리 정부는 ILO가 강조한 것과 같이 이해관계자와의 협력과 소통을 강화하는, 모범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 썩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이 가능할 것 같다. 출범 직후부터 노동계와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오던 정부는 최근 각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조의 파업에는 손해배상 청구가 특효약’이라든지, 어느 공장에 노조가 없는 것을 두고 ‘감동’이라고 하는 등 노동계에 적대적 인식을 보여온 인사를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때문에 노동계와 정부 간 관계(노정관계)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노동자의 건강과 권익 보호를 위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위해, 노정관계가 회복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기후변화와 산업안전에 대한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기사 더 알아보기
1. "정의로운 전환, 어떻게 이행되고 있나", 23기 김예진, 24기 배장민, 서채연, 25기 구윤서, 손동찬,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4377
2. "수소 발전의 또 다른 과제, 안전사고", 21기 김채윤, 22기 박주은, 23기 김서정, 박하연, 24기 김유주, 이우진,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4177
참고문헌
[점점 더 뜨거워지는 여름, 더욱 위험해질 그들의 작업환경]
1) 김기범, "밤낮으로 덥다 덥다 했더니…수치로 확인된 ‘최악의 여름’", 경향신문, 2024.09.05, https://www.khan.co.kr/environment/climate/article/202409052114005
2) 신은진, "폭염에 온열질환자 급증, 70대 이상 20.4%", 헬스조선, 2023.08.04,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3/08/04/2023080401347.html
3) 유호경, "온열질환 근로자 증가, '폭염법' 시행 시급하다", 이코리아, 2024.04.30, https://www.ekorea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3113
4) 정철우, "폭염 피해, 근로자 보호 법안 발의", 투데이에너지, 2024.07.31, https://www.todayenergy.kr/news/articleView.html?idxno=273272
5) 하미래, 김민성, "땡볕에 땀 줄줄, 갑작스런 비엔 사고 위험", 단비뉴스, 2024.08.24, https://www.danb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7388
6) CBS 기후로운 경제생활, ""열사병도 중대재해…원청 대표가 책임진다"", 노컷뉴스, 2024.08.18, https://www.nocutnews.co.kr/news/6196667?utm_source=naver&utm_medium=article&utm_campaign=20240818100035
[‘권고’에서 나아가지 못하는 현행 보호책]
1) 이재헌, "‘모호한’ 산안법ㆍ‘강제성 無’ 가이드라인이 만든 폭염 노동 사각지대", 월간노동법률, 2024.07.31, https://www.worklaw.co.kr/main2022/view/view.asp?accessSite=Naver&accessMethod=Search&accessMenu=News&in_cate=124&in_cate2=0&gopage=1&bi_pidx=36861
2) 이지원, "금배지의 게으름 “폭염 노동자 보호법 6건 모두 낮잠”", 더스쿠프, 2023.08.22, https://www.thescoop.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697
3) 최원석, 박세은, "건설·택배 노동자 목숨 위협하는 폭염이 온다", 단비뉴스, 2024.05.17, https://www.danb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6605
4) 한웅희, "[단독] 폭염 속 ‘나홀로 작업’ 내몰린 60대 결국… 다음날 아들이 발견", 국민일보, 2024.09.04,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25355998&code=11131100&cp=nv
[해외의 경우, 명확성과 강제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조치 시행 중]
1) 윤수현, "기후변화 위기 속 폭염 대응 어떻게…“해외사례 참고해 제도 보완해야”", 에너지경제, 2024.07.02, https://www.ekn.kr/web/view.php?key=20240702029008206
2) 산업안전보건연구원, "폭염·한파 건강장해 예방조치 개선방안 연구", 2022.11, https://www.kosha.or.kr/oshri/publication/researchReportSearch.do?mode=view&articleNo=438637
3) 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 "Ensuring safety and health at work in a changing climate", 2024.04.22, https://www.ilo.org/publications/ensuring-safety-and-health-work-changing-clim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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