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경제 시대, '지하'가 답이 될 수 있을까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26기 신혜진
탄소중립과 수소경제의 중요성
탄소중립 달성과 에너지 안보 확보를 위한 국제적인 흐름 속에서 ‘수소’는 핵심 청정에너지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기와 달리 대용량 에너지의 장거리 수송과 장기 저장이 가능하고, 열이나 전기 등의 2차 에너지 생산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재생에너지 기반의 그린수소는 생산 시에도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므로 차세대 에너지 시스템의 중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수소 수요 또한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까지 전 세계 수소 수요가 현재의 30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2020년 약 44만톤에서 2050년 약 1690만톤까지 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수소의 생산과 공급은 대부분 개질 및 부생수소, 즉 그레이수소 위주로 이뤄지고 있으나, 2030년을 기점으로 블루수소와 그린수소를 병행하는 공급 구조로 변화할 것이 예상된다.
그러나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변동성 재생에너지와 연계해 수소를 생산할 시 생산량이 간헐적일 수밖에 없고, 수소의 생산과 수요 사이에는 시공간적 불일치가 필연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안정적으로 수소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수소 저장 기술이 필수적이다.
기존의 고압 용기나 액화 저장방식은 효율성, 경제성, 안전성 측면에서 대규모 적용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이에 따라 대규모 에너지 저장이 가능한 수소 지중저장(Underground Hydrogen Storage, UHS)이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자료 1. 수소 수요 전망]
출처 : 에너지 신문
기존 수소 저장방식
현재 상용화된 수소 저장 기술은 주로 압축 또는 액화를 통한 물리적인 저장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크게 압축 저장(350~700bar), 극저온 액화 저장(–253°C), 그리고 이를 결합한 극저온 압축 저장으로 분류된다.
- 압축 저장: 350-700bar 이상의 압력으로 압축해 저장하는 방식으로, 현재 수소차에 널리 적용된다. 압축 시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냉각기를 함께 사용한다.
- 액화 저장: -253°C의 극저온 상태로 유지해 액체 형태로 저장하는 방식이다. 상압 대비 부피를 약 1/800로 줄일 수 있어 공간 효율성이 높다.
- 극저온 압축 저장: 압축과 액화를 함께 사용하는 극저온 압축 저장 방식으로, 미량의 기화 손실을 줄일 수 있다.
이러한 저장 방식은 수소차, 충전소 등 소규모 수요에는 적합하나, 대규모 저장에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한계를 갖는다.
- 저장 용량: 대부분의 저장 용기는 500kg 이내로, 대규모 저장에 한계가 존재한다.
- 효율 저하: 압축 시 수소 양의 약 9-12%, 액화 시 30-35%의 추가 에너지가 소모된다.
- 기화 손실: 액화 수소는 지상 저장 시 매일 0.3~0.95% 수준의 기화율이 발생해 장기 저장에 불리하다.
- 비용 문제: 고압 탱크에 사용되는 복합 탄소섬유 소재의 경우 저장 비용의 65%를 재료 비용이 차지해 경제성이 낮다.
이러한 이유로 기존 저장 방식은 수소경제 확대를 뒷받침하기 어려우며, 특히 재생에너지 기반 수소 생산이 가진 ‘시공간적 불균형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저장 인프라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수소 지중저장의 종류와 방법
수소 지중저장은 대규모 수소를 안전하게 장기 저장할 수 있는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저장 방식은 활용되는 지질 구조에 따라 여러 형태로 구분된다. 지금까지 지중저장 기술은 기존 원유 및 천연가스 시장에서 널리 사용돼 왔으며, 이러한 기술 경험을 바탕으로 수소의 물리적 특성에 맞춰 적용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가장 대표적인 방식은 ‘암염공동(Salt Cavern) 저장’이다. 이는 지하 암염층에 시추공을 뚫고 해수 등을 주입해 암염을 용해시켜 공동을 조성한 뒤, 그 공간에 고압 수소를 저장하는 방법이다. 암염은 매우 낮은 공극률과 투과도를 갖고 있어 수소 누출 위험이 작고, 또 공동 내 압력을 유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쿠션가스도 적다. 수소와 화학적 반응을 하지 않아 장기 저장에 적합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또한 반복적인 수소의 주입과 회수가 가능해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가능하다. 실제로 영국의 Teesside와 미국의 Clemens, Spindletop 등에서는 이 방식을 활용한 상업적 수소 저장소가 운영되고 있다.
이와 함께, 이미 사용이 종료된 가스전이나 석유전 같은 ‘고갈 저장소(Depleted Reservoirs)’를 활용하는 방식도 존재한다. 이러한 저장소는 과거 천연가스를 안전하게 보관했던 지질 구조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어,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대용량 저장이 가능하다. 특히 지질 및 저류층 특성이 사전에 확보돼 있어 추가 탐사 비용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저장 가스의 누출 가능성 또한 적지만, 저장소 내 잔여 가스와의 혼합 가능성은 고려해야 할 요소이다.
또 다른 방식은 ‘대수층(Aquifers) 저장’이다. 이는 다공성 퇴적암으로 구성된 대수층의 공극에 수소를 주입하는 방법으로, 지질적 조건이 적절할 경우 대용량 저장이 가능하고 광범위하게 분포해 지리적 제약도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가스 이동 차단층 역할을 하는 덮개암의 존재, 수소의 지화학적 반응 가능성, 환경 규제 대응 등에서 보다 많은 지질 정보와 실증 연구가 요구되며, 상업적 적용은 아직 제한적이다.
마지막으로, 지질 구조에 의존하지 않고 인공적으로 지하 공간을 굴착하는 ‘암반공동(Hard-rock Caverns) 저장’ 방식이 있다. 이는 국내처럼 암염층이나 고갈 저장소가 없는 지역에서 특히 주목받는 방식으로, 기반암층에 인공적으로 저장공간을 조성한 뒤 고압 기체 수소나 극저온 액체 수소를 저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암반공동은 입지 제한성이 작고, 지상 공간을 거의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안전성과 보안성이 뛰어나 다양한 장소에 적용될 수 있다. 다만, 초기 건설 비용이 높고 암반의 열·역학적 거동에 대한 정밀한 안정성 평가 및 굴착 기술이 요구된다는 과제도 존재한다.
이처럼 수소 지중저장 방식은 각 방식마다 장점과 제약이 뚜렷하며, 지질학적 조건, 필요한 저장 용량, 운영 요건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최적의 기술을 선택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암염공동은 일일 수요 변동에 대응하기 위한 단기 저장에 적합하며, 고갈 가스전이나 대수층은 계절적 수요 변동에 대응하기 위한 장기 저장에 적합하다.
[자료 2. 수소 지중저장]
출처 : ( Amir Jahanbakhsh 외, 2023)
한국의 수소 지중저장 가능성
미국 인터마운틴-웨스트(I-WEST) 지역을 대상으로 수행된 기술적 경제성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해당 지역은 지중저장을 통해 2020년 총 에너지 소비량의 최소 72%를 저장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는 지중저장 기술이 대규모 에너지 저장에 매우 효과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도 수소 지중저장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한국은 암염공동, 대수층, 고갈 가스전과 같은 지질학적 구조가 거의 없다. 따라서 국내에서는 해외에서 상용화된 지중저장 기술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우며, 암반공동을 활용한 지중저장 방식이 유일한 선택지이다. 견고한 기반암을 인공적으로 굴착해 저장 공간을 마련하므로, 한국처럼 단단한 화강암 지형이 넓게 분포하는 지역에 특히 적합하다.
실제로 국내 여러 지역에서는 지하 수십 미터 깊이만 내려가도 역학적으로 안정된 암반층을 확보할 수 있으며, 활용 가능한 산지도 많아 시공 여건도 우수하다. 이미 액화천연가스를 복공식 암반공동에 저장한 실증 경험도 존재해, 이를 바탕으로 수소 저장 기술로의 확장도 가능하다. 기존 LNG 저장 사례에서 기화율은 지상 시설이 0.075~0.15%/일인 반면, 지하 저장 시 0.01%/일 수준으로 낮아졌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수소 지중저장 기술의 효용성을 잘 보여준다.
이와 같은 기술적 가능성과 국내 조건의 정합성에 따라, 학계와 정부는 암반공동 저장 방식을 한국의 수소경제를 뒷받침할 핵심 인프라 기술로 보고 있다. 실제로 한국지질자원연구원(KIGAM) 등은 고압 수소 반복 주입 시 암반의 열-역학적 거동을 분석하는 실험을 수행 중이며, 강관 파이프형 저장구조, 동굴형 공동 등 다양한 저장 구조 설계안을 마련하고 있다.
결론
전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 흐름 아래, 수소는 핵심 에너지원으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생산된 수소를 언제 어디서나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저장 기술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특히 그린수소는 시공간적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이를 완충할 대규모 장기 저장 인프라 없이는 실질적인 수소경제로의 이행이 어렵다.
그러나 기존의 고압 용기나 액화 수소 저장 방식은 용량, 효율성, 경제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어, 대규모 수소경제 시대에는 지중저장 기술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미 미국, 영국, 독일 등에서는 수십만 m³ 규모의 저장소가 운영 중이며, EU 및 DOE는 이를 향후 탄소중립 사회 실현의 핵심 기반시설로 명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국제적 흐름 속에서, 한국은 국내 지질 조건에 맞춘 암반공동 기반 수소 지중저장 기술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향후 제주도 등과 같은 에너지 자립섬, 도심 내 수소 저장기지, P2G 시스템 구축 등 다양한 실증 모델로의 확장성도 검토해야 한다.
수소 지중저장 기술은 특정 기술 분야를 넘어, 수소경제의 확장과 지속가능성, 에너지 안보를 뒷받침할 인프라 기술로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질적·정책적 환경에 맞는 저장 방식을 선택하고, 실증과 제도 정비 뿐만 아니라 민간 참여 기반도 확보해 나가야 한다. 선제적인 대응을 통해 한국이 동아시아 수소에너지 허브로 도약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수소 저장기술에 대한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기사 더 알아보기
1. "수소를 암모니아로 옮긴다고?!", 20기 서범석, 윤지민, 황지영,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3470
수소를 암모니아로 옮긴다고?!
수소를 암모니아로 옮긴다고?!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20기 서범석, 20기 윤지민, 20기 황지영 [수소 전환, 필수!]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연료는 언젠가 고갈될 것이다. 때문에 수소를 연료로
renewableenergyfollowers.org
2. "ESS 만이 답이 아니었다? 재생에너지 불안정성의 돌파구, P2X 기술", 18기 김민주, 최별, 19기 권승호, 김수정, 임하영,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3276
ESS만이 답이 아니었다? 재생에너지 불안정성의 돌파구, P2X 기술
ESS만이 답이 아니었다? 재생에너지 불안정성의 돌파구, P2X 기술 18기 김민주 최별 19기 권승호 김수정 임하영 '워터 슬라이드의 물이 일정하지 않게 나온다면 어떨까?' 물이 어떨 땐 조금씩 흐르
renewableenergyfollowers.org
참고문헌
[탄소중립과 수소경제의 중요성]
1) A. Safronova and A. Barisa, "Realizing a Green Hydrogen Economy: An Examination of Influencing Factors" , Environmental and Climate Technologies, vol. 27, (1), pp. 928–949, 2023
2) IEA, " Global Hydrogen Review 2023", OECD, 2023
3) J. Shin, "Hydrogen Technology Development and Policy Status by Value Chain in South Korea", Energies (Basel), vol. 15, (23), pp. 8983, 2022
4) K. Dillman and J. Heinonen, "Towards a Safe Hydrogen Economy: An Absolute Climate Sustainability Assessment of Hydrogen Production", Climate (Basel), vol. 11, (1), pp. 25, 2023
[기존의 수소 저장방식]
1) C. Tarhan and M. A. Çil, "A study on hydrogen, the clean energy of the future: Hydrogen storage methods", Journal of Energy Storage, vol. 40, pp. 102676, 2021
2) L. Zhang, "Hydrogen Storage Methods, Systems and Materials", Highlights in Science, Engineering and Technology, vol. 58, pp. 371–378, 2023
[수소 지중저장의 종류와 방법]
1) A. Jahanbakhsh et al, "Underground hydrogen storage: A UK perspective", Renewable & Sustainable Energy Reviews, vol. 189, pp. 114001, 2024
2) F. Chen et al, "Technical and Economic Feasibility Analysis of Underground Hydrogen Storage: A Case Study in Intermountain-West Region USA", 2022
3) G. O. Taiwo, O. S. Tomomewo and B. A. Oni, "A comprehensive review of underground hydrogen storage: Insight into geological sites (mechanisms), economics, barriers, and future outlook", Journal of Energy Storage, vol. 90, pp. 111844, 2024
4) S. O. Bade et al, "A review of underground hydrogen storage systems: Current status, modeling approaches, challenges, and future prospective", International Journal of Hydrogen Energy, vol. 80, pp. 449–474, 2024
5) Q. Zhao, Y. Wang and C. Chen, "Numerical Simulation of the Impact of Different Cushion Gases on Underground Hydrogen Storage in Aquifers Based on an Experimentally-Benchmarked Equation-of-State", International Journal of Hydrogen Energy, vol. 50, pp. 495–511, 2024
[한국의 수소 지중저장 가능성]
1) 권태혁, "탄소중립/에너지자립형 지하도시를 위한 수소 지중 저장 기술 개발 보고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2023
2) 박의섭, 정용복 and 오세욱, "[해설] 탄소중립과 수소에너지 지하저장", 한국자원공학회지, vol. 59, (5), pp. 462–473, 2022
3) 조성학 et al, "암염 공동 내 수소 지중 저장 기술과 연구개발 동향", 한국가스학회 학술대회논문집, vol. 2024, (5), pp. 142, 2024
'News > 수소-바이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산에너지 시대, 보급량 확대를 위해서 수소도 분산형으로! (3) | 2025.05.26 |
---|---|
수소 사회의 혈관, 수소 유통 기술에 대하여 (4) | 2025.04.28 |
작지만 강한 기술, 수소 누출 잡는 MEMS 센서 (5) | 2025.04.28 |
아프리카와 수소의 만남 (11) | 2025.04.28 |
신재생에너지로 둔갑한 바이오매스, 보조금은? (7) | 2025.03.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