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야생으로 돌아온 도시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22기 최정우
과연 훼손된 자연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변으로 새로운 전략을 소개하고자 한다. ‘재야생화 (Rewilding)’는 생태계의 자생력에 초점을 맞춘 생태계 보존 전략이다. 재야생화는 생태계에 혼란을 주는 인공 구조물을 해체하거나 산업으로 오염된 부지를 회복시키는 등 자연이 자생력을 회복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토착종 복원에 중점을 두는 기존 생태 복원과는 차이가 있다. 이상적인 형태를 유지한 장소를 골라 울타리를 두르는 기존 전략과는 달리, 재야생화는 훼손된 지역에서 시작한다. 대부분 재야생화 프로젝트에서 인간은 훼손된 지역에 동물을 도입하는 작업만 하며, 주로 대형 포유류를 데려와 동물과 그 지역 생태계에게 후일을 맡긴 채 경과를 지켜본다.
재야생화 개념은 1990년대 미국의 환경단체 어스 퍼스트 대표 데이브 포어맨과 보건 생물학자 마이클 사울에 의해 제시되었으며, 현재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리와일딩 워킹그룹에서 재야생화의 원칙과 지침을 개발하며 제도화하고 있다. 또한, 유럽에서는 70여 개의 재야생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국외에서 재야생화가 진행된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독일 란트샤프트 공원]
가장 먼저 소개할 곳은 독일 두이스부르크에 위치한 란트샤프트 공원(Landschaftspark Duisburg-Nord)이다. 독일어로 란트샤프트(Landschaft)는 "생태" 또는 "풍경"을 뜻한다.
[자료 1. 독일 란트샤프트 공원]
출처 : der Reisende - Travels in Germany
두이스부르크는 독일을 대표하는 공업 도시였지만 산업구조의 변화로 자연스럽게 쇠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이스부르크는 란트샤프트 공원을 조성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며 위기를 극복했다.
란트샤프트 공원이 탄생하기 전, 이 지역에는 커다란 제철소가 있었다. 공장 부지의 면적은 약 2.3㎢로, 이는 유럽의 작은 나라 모나코의 면적(1.95㎢)보다 더 넓다. 제철소는 독일의 대표적인 철강기업인 티센(Thyssen)의 공장이었으나, 이후 티센이 두이스부르크를 떠나면서 해당 부지는 철골 구조물들만 남긴 채 폐허로 남았다.
두이스부르크에서는 이를 내버려 두지 않고 1999년 환경 공원으로 탈바꿈하였다. 그러나 기존의 공장을 철거한 후 공원을 만들지 않고, 폐공장은 그대로 둔 채 개조하여 공원을 조성하였다. 70 미터 높이의 대형 용광로는 전망대로, 높은 건물 외벽은 암벽 등반장으로 개조했으며, 천장이 높은 건물 내부에 영화관을 만들어 음향의 질을 높였다. 이후 개조한 폐공장의 주변에 꽃과 나무를 심고 연못, 산책로, 자전거 도로 등을 만들었다. 부지가 매우 넓었기 때문에 다양한 식물들을 심을 수 있었고, 그 자체만으로도 마치 하나의 식물원이 되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한때는 환경 오염의 주범이었던 공장이 ‘환경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북미와 남미의 영양 재야생화]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에서는 ‘영양 재야생화(Trophic rewilding)’를 진행했다. 영양 재야생화는 훼손된 지역의 먹이사슬 상위에 있던 포식자 동물을 도입해 먹이사슬을 복원하는 원리로, 지난 1995년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회색 늑대를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회색 늑대는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1926년 사라졌다. 회색 늑대가 사라진 이후 국립공원에는 엘크를 비롯한 사슴과 포유류의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키가 작은 나무와 풀뿌리도 사라졌다. 그러나 회색 늑대를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데려다 놓은 이후 엘크가 2만여 마리에서 8,300여 마리로 감소했다. 사슴과 포유류의 개체 수가 줄어들자 식물들이 풍성해졌고, 개울이 제 모양을 찾으며 물고기도 돌아왔다. 소형 초식동물들도 모여들었으며, 이들을 먹이로 삼는 독수리도 옐로스톤을 찾아왔다. 국립공원과 연구진은 초기에 늑대 한 무리를 데려온 이후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았음에도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예전 모습을 되찾았다.
[자료 2. 버팔로를 사냥 중인 옐로스톤 회색 늑대 무리]
출처 : 쿠키뉴스
남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아르헨티나에 위치한 이베라 습지는 20세기 초 목장으로 개발되면서 파괴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가축을 보호하고 모피를 얻기 위해 재규어를 남획했다. 재규어가 사라지면서 팜파스 사슴, 늪사슴과 대형 설치류인 카피바라, 케이맨 악어, 황색 아나콘다 등이 늘어났고 기존의 생태계가 어질러졌다. 이에 아르헨티나 재야생화 재단은 해당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면서 이베라 습지의 생태계 복원을 추진했다. 아르헨티나 재야생화 재단은 재규어 다섯 마리를 방사함으로써 공포 효과를 불러와 생태계를 살릴 수 있다고 기대했다. 이베라 습지는 앞서 언급한 옐로스톤에서 늑대가 직접 엘크를 잡아먹은 것보다 늑대에 대한 공포로 엘크의 개울 출입이 줄면서 식물이 번성했던 것과 같은 원리가 적용되었다. 이베라 습지에서도 설치류인 카피바라는 재규어가 오는지 보느라 식물을 먹는 시간이 줄었다. 또한, 하위 포식자인 여우가 재규어를 피해 다니면서 평소 먹잇감이던 멸종 위기 조류들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재야생화의 장점과 기대 효과]
앞서 언급한 영양 재야생화는 먹이사슬 연쇄 효과로 전체 생태계가 바뀌는 이른바 ‘영양 종속(trophic cascade)’ 효과를 유발하며 생태계를 복원했다. 생태계 복원 외에도 재야생화는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지니고 있다.
생물학 저널인 영국 '왕립학회 자연과학 회보 B(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B)‘의 영양 재야생화 특집에는 순록과 코뿔소를 비롯한 대형 포유류의 재야생화가 들불 등의 재앙과 기타 위협으로부터 초지와 숲, 툰드라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 실렸다. 해당 편 객원 편집자로 참여한 네덜란드 생태학연구소(NIOO-KNAW) 연구원 리스베트 바커 박사는 “한 지역에서 동물이 멸종하면 생태계에서 이들이 담당했던 독특한 역할도 사라지게 된다는 증거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그 결과로 대형 초식동물들이 사라지면서 풀이 들판에 그대로 남아 대형 들불의 '연료'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영양 재야생화는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재앙으로부터 자연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자료 3. 도시 재야생화(Urban Rewilding)]
출처 : AI넷
또한, 재야생화는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친다. '도시 재야생화'는 모든 길모퉁이, 옥상, 뒷마당, 공터 등 가능한 모든 곳에 자연을 삽입하여 인간과 자연 간의 균형을 제공한다. 자연이 인간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자연에 둘러싸여 있지 않더라도 자연에 노출되면 기분이 좋아지고 스트레스가 줄어들며, 특정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높아진다. 또한, 도시 정원은 자연적이고 신선한 농산물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정원, 산책로 및 자연공원은 사람들이 이웃과 대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재야생화의 단점과 한계]
“재야생화”는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에 대한 대책으로 주목을 받았다. 비영리 단체 ‘리와일딩 유럽’의 한 활동가는 “재야생화는 자연이 스스로 돌보게 하는 것이다. 자연적인 과정이 토지와 바다를 변화시키고 손상된 생태계를 복구하고 황폐해진 경관을 복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야생화의 한계에 관한 몇 가지 지적이 제시되었다.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자본주의가 꼽히지만, 재야생화 과정에서도 자본주의 원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자본가들은 자연을 상품화하고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자원으로 여겼다. 재야생화 전략 중에는 수익성에 따라 자연 공간에 등급을 매기는 것이 있다. 수확량이 많지 않은 땅은 재야생화 지역으로 선정해 야생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만, 수익성 있는 토지는 계속해서 산업적 농업 단지로 이용될 것이다. 석유 탐사, 대규모 농업, 삼림 벌채와 같은 관행에 맞서지 않은 채 재야생화만으로는 환경을 완전히 복원할 수 없으므로 인간과 환경 사이의 지속 가능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더 급진적인 해결책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ZSL 기후 및 생물 다양성 전문가 나탈리 페토렐리(Nathalie Pettorelli) 박사는 "재야생화가 기후와 생물 다양성 문제를 저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오히려 다른 사회적 문제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인간과 야생동물 간의 교류가 잦아지면서 침입종을 통해 기생충, 감염병이 유입되기 쉬워지고,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또한, 자연 친화적인 공공 부지로 인근 거주 구역 및 상업 구역의 임대료가 증가하는 '그린 젠트리피케이션(Green gentrification)'으로 저소득 원주민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료 4. 옐로스톤 국립공원과 아메리카 원주민]
출처 : National Park Service
아직 재야생화에 관한 사례와 연구가 부족하며, 전문가들의 논의가 필요한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재야생화가 ‘기후변화의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일 수 있으나,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재야생화’는 환경 파괴에 대한 대책으로 주목할만하다.
자연 복원에 대한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기사 더 알아보기
1. "청계천 복원 사업: 도심 속 자연을 꿈꾸며", 21기 정재혁,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3669
2. "범 내려온다", 21기 장세희, https://renewableenergyfollowers.org/3718
참고문헌
[독일 란트샤프트공원]
1) 유피디, der Reisende - Travels in Germany, “Duisburg | #15. 란트샤프트 공원”, 2013.08.16., https://reisende.tistory.com/2369
1) 엄남석, "멸종 대형 초식동물 복원이 지구온난화 완화에 도움", 뉴스홈, 2018.10.24, https://www.yna.co.kr/view/AKR20181024077100009
3) 한성주, “진정한 자연보호 전략은 '그냥 내버려 두기'”, 쿠키뉴스, 2021.04.24, https://www.kukinews.com/newsView/kuk202104230215
[재야생화의 장점과 기대 효과]
1) 박영숙, “우리는 우리의 도시를 “재 야생”으로 만들어야 한다.”, AI넷, 2021.07.02, http://www.ainet.link/4432
2) “THE SECRET LIFE OF YOUR MICROBIOME - Why NATURE and BIODIVERSITY are Essential to Health and Happiness”, Your Brain on Nature
https://www.newspeng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12444
3) Sam Ord, “We need a wildly different system to restore nature”, Socialist Worker, 2021.08.24.
'News > 기후변화-환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양을 오염시키던 폐어망과 로프의 새로운 변신! (6) | 2022.10.31 |
---|---|
환경을 파괴할 권리...신재생에너지가 갖는 딜레마 (23) | 2022.10.31 |
우리가 표토를 지켜야 하는 이유 (3) | 2022.10.31 |
폭우, 지금은 이상 기후지만 미래엔…? (4) | 2022.09.26 |
기후변화로 몸살 앓는 전세계 (6) | 2022.09.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