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의 변화, 기후 위기를 직면한 미술관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20기 권혜주
기후 위기를 직면한 미술관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사회 전체가 총체적으로 변화해야 하는 시기, 미술관들은 ‘지속 가능한 전시’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그동안 미술관들은 ‘자본집약적 전시’로 행사 한 번마다 석고벽, 현수막 등 5톤(t) 트럭 4대가량의 폐기물을 만드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제로 웨이스트(쓰레기 배출 최소화)’와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해 해상운송, 전시물품 재활용, 홍보물 디지털화 등을 시도하는 미술관이 등장했다. 이렇게 기후 위기에 관한 전시는 시의적절한 동시에 그 자체가 탄소 배출 행위라는 점에서 불편하게 다가온다. <기후 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는 이런 모순을 대면하며 기후 위기 상황에서 예술을 위한 ‘집’에 접근한다.
[자료 1. 전시에서 나온 폐기물로 폐기물 대부분은 목재 뼈대와 합판]
출처 : 단비뉴스
서울시립미술관은 ‘배움’과 ‘트랜스미디어’에 기반해 기후 위기를 직면하고 기후 행동을 촉구하는 ‘기후 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전시를 8월 8일까지 개최했다.
*트랜스미디어 : 트랜스(trans)와 미디어(media)의 합성어, 미디어 간의 경계선을 넘어 서로 결합 및 융합되는 현상
‘기후 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는 ‘오이코스(oikos)’라는 같은 어원을 가진 지구라는 모든 사물과 생명체의 ‘큰 집’과 사람이 거주하는 살림집 ‘작은 집’의 관계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기후 시민 3.5>의 연구를 토대로 기후 위기의 현실 인식을 촉구하고자 마련됐다. 기후변화의 해결책에 관한 전시는 아니지만 한 나라의 시민 3.5%가 행동하면 사회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는 에리카 체노워스의 연구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됐다.
[자료 2.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전시 포스터]
출처 : 디자인정글
서울시립미술관, '기후 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① 첫 번째 집 : 죽어가는 지구의 생태계를 담은 ‘비극의 오이코스’
서울시립미술관 입구와 로비에는 고사한 나무들이 설치되어 있다. 이는 환경단체 녹색연합이 강원도 정선 일대의 함백산에서 옮겨온 고사한 전나무와 경북 울진에서 고사한 금강소나무를 가져와 설치한 것들이다. 최근 기후변화로 한라산에서 백두대간까지 침엽수들이 집단 고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한라산에서 백두대간까지 집단 고사하는 침엽수, 서식지를 잃고 아사한 산양, 북극곰 등 멸종 위기에 처한 박제된 동물들이 설치된 전시장에는 플라스틱과 독극물로 오염되는 물, 홍수, 산불, 이상 기온으로 이어지는 남극과 북극의 해빙, 에너지 사용이 급증하는 데이터 센터 등 기후 위기의 현실을 미술관에서 간접 체험한다.
[자료 3. '기후 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전이 펼쳐지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전경]
출처 : 디자인정글
② 두 번째 집 : 짓고 부수는 사람의 주택 ‘집의 체계 : 짓는 집–부수는 집’
사람의 주택으로, 근대기 이후 우리나라 살림집과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사물의 생애 주기를 보여준다. 세계 탄소 배출량의 약 40%가 건설 산업에 기인하는 만큼 수명이 짧은 주택의 생산, 유통, 건설, 폐기의 일상에서 사람과 사물의 생애 주기를 대형 영상, 설치, 인포그래픽으로 보여준다. 설치된 작품들은 폐기물과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친환경적(eco-friendly)인 삶의 실천을 위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자료 4. 영상, 표본, 설치 등 다양한 작품이 전시된 ‘기후 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전시 전경]
출처 : 디자인정글
③ 세 번째 집 : 도시에서 인간의 활동으로 서식지를 잃은 벌, 새, 나비들의 생존을 돕는 ‘B–플렉스’
미술관 옥상과 정원에 세워진 세 번째 집 ‘B-플렉스’는 서식지를 잃은 벌, 새, 나비들의 생존을 돕는 공간이다. ‘B-플렉스’는 새의 산란기와 봄부터 꽃가루를 모으고 월동 준비를 하는 벌의 활동을 고려해 초가을까지 설치된다. 벌, 새, 나비의 생활을 방해하지 않도록 관람객의 방문은 제한되며 미술관 마당에 준비된 망원경과 외벽 모니터로 관찰할 수 있다.
[자료 5. <B-플렉스> 혼합재료, 가변설치]
출처 : 디자인정글
④ 제로 웨이스트
전시장 한편에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플라스틱 용기들이 설치되어 있다.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 플라스틱 제품과 일회용품 소비량 증가로 인한 플라스틱 폐기물 과다 발생으로 인해 초래된 환경오염의 심각성에 대해 알리며, ‘제로 웨이스트’의 개념을 쉽게 이해하고 친근하게 느껴지도록 한다.
[자료 6.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전시장 한편의 제로 웨이스트]
출처 : 디자인정글
기획부터 전시까지, 지구를 위한 전시 방식
예술을 위한 ‘집’인 미술관에서도 기후 위기 상황에 접근해 자원 재활용을 통해 전시 그래픽과 전시 공간을 구현하고 전시 운영 전반에 걸쳐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전시 그래픽, 전시 공간, 웹사이트에 이르기까지 폐기물과 에너지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전시 해설 자료인 월 텍스트, 전시장 내 설치된 그래픽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플라스틱 비닐(시트지) 대신 미술관과 협력 기관이 함께 모은 이면지를 재사용하였고, 전시의 가벽, 전시대, 페인트를 재사용함으로써 자원 낭비를 줄였다. 또한 모듈형 벽체, 환경친화 보양재, 버려진 책상과 액자, 중고 노트북과 태블릿 PC 등의 재사용과 재활용을 통해 전시 폐기물을 최소화했다.
특히 전시 그래픽 디자인도 잉크 사용량을 3분의 1로 줄이는 서체인 ‘라이먼 에코(Ryman Eco)’를 활용했다. 서울시립미술관 김혜진 학예연구사는 “전시를 구현하는 모든 방식에 있어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라고 설명했다.
[자료 7. ''기후 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그래픽 디자인의 이면지 사용]
출처 : 프린지
[자료 8. ''기후 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그래픽 디자인의 잉크 절약]
출처 : 프린지
지속 가능 전시 도전한 부산현대미술관
부산 현대미술관은 2021년 5월 4일부터 지난 22일까지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 전시를 하면서 작품 운송과 설치 등 전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고 쓰레기를 줄이는 작업에 도전했다.
우선 작품 6점을 미국 뉴욕에서 해상운송으로 실어와 탄소 배출량을 40분의 1로 줄였다. 항공운송이 아닌 해상운송으로 전시회가 가능했던 것은 직접 실어 오는 작품 수를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항공운송이 필요한 작품들은 현지에서 제작 설명서를 전송받아 부산에서 다시 제작하거나, 온라인 생중계를 통해 방송하는 방법을 택했다. 전시를 기획한 최상호 학예연구사는 “환경을 주제로 한 작품을 일회용 포장재로 칭칭 감아 비행기로 옮겨 놓는 상황이 역설적으로 느껴졌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스캔한 작품 이미지를 전송받은 뒤 그리드(격자)로 나눠 종이에 인쇄하고 이어 붙였다. 인쇄할 때도 콩기름 잉크와 친환경 종이를 썼다. 작품 설명을 아크릴 등에 인쇄하는 대신 이면지에 손글씨로 쓰거나 모니터에 글을 띄웠다. 인쇄할 때 배출되는 탄소를 줄이기 위해서다.
세 번째, 나무 벽을 사용했고, 다음 전시에 재활용할 수 있도록 페인트나 시트지를 입히지 않았다. 일반적인 미술 전시에 쓰는 석고 벽은 각재(角材)로 된 뼈대에 합판 1~2장을 붙인 후 그 위에 석고보드를 덧대어 페인트로 마감하는데, 접착제가 사용되기 때문에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네 번째, 전시 홍보도 대부분 온라인으로 했다. 불가피하게 만든 홍보물은 한 가지 색 잉크만 사용했고 포스터, 초청장, 가방 등은 제작하지 않았다. 온라인 홍보도 데이터 전송에 쓰이는 전기를 줄이기 위해 디지털 파일의 크기와 개수를 최소화했다. 이 전시의 폐기물은 나사와 못, 철사 등의 부속과 작품마다 붙는 제목 및 설명판이 전부다. 최 학예연구사는 “모든 홍보를 온라인으로 진행했음에도 다른 전시 관람 인원과 큰 차이가 없다”라며 “현수막이나 포스터 등을 통한 홍보가 효과적인지 의문을 갖게 됐다”라고 말했다.
[자료 9. 부산 현대미술관의 '지속 가능한 미술관 : 미술과 환경' 전시관 입구]
출처 : 단비뉴스
[자료 10. 부산 현대미술관이 전시벽을 나무 합판으로 대체한 모습]
출처 : 단비뉴스
기후 위기를 직면한 미술관의 미래 그리고 전시의 변화
서울시립미술관 ‘기후 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의 전시 디자인이 세계 3대 디자인 상인 독일 ‘2021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본상을 수상했다. 27일 서울시립미술관에 따르면 해당 전시가 ‘기후 위기’를 전시 구현 방식으로 확장해 에너지, 자원 소모를 최소화했다는 점이 높이 평가돼 수상으로 이어졌다. 또한 서울시립미술관이 공립미술관으로서 다양한 협업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미술을 통한 ESG 경영의 모범사례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백지숙 서울시립 미술관장은 “‘기후 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는 사람과 사람이 만든 사물 그리고 생명체가 공존하는 지구라는 커다란 집의 현실이 어떠한지 직면함으로써 환경을 위한 생활 속 작은 실천을 모색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번 전시를 계기로 공립미술관으로서 환경·생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ESG 운영 철학을 이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해외 예술계에서도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영국 런던의 서펜타인 갤러리 등 30개 문화기관은 영국 예술위원회의 새로운 환경 프로그램 ‘스포트라이트(Spotlight)’에 따라 2023년까지 탄소 배출량의 10~20%를 줄이기로 공약했다. 스위스 바젤에서 매년 6월 열리는 세계 최대 미술품 시장 아트 바젤에서는 페이스 갤러리 등 전시업체들이 1회용 컵 대신 텀블러 사용, 인쇄물 대신 아이패드 이용, 대중교통 이용 등을 직원들에게 권장한다.
물론 이 정도의 시도와 노력으로 기후 위기 대응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전시에서 제시한 제안들은 관계자뿐만 아니라 관람객과 함께 기후 위기의 심각성 인식과 기후 행동 촉발에 의미가 크다. 앞으로 미술관의 전시 구현 방식도, 문화생활을 즐기는 우리의 전시 관람 방식도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또한, 기후 위기를 직면한 미술관의 생태적 실천은 지속 가능할 것이다.
[자료 11. 배형민 교수가 큐레이팅 한 '기후 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2021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본상 수상]
출처 : 한겨레
참고문헌
[기후 위기를 직면한 미술관]
1) 프린지, 프린지 공식 블로그, <인류세에 대처하는 예술 가이드> STUDY ECO_'기후 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2021.08.07, https://blog.naver.com/fringenet/222460794050
[서울시립미술관, '기후 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1) 아트인사이트, 아트인사이트 공식 블로그, 오랫동안 함께한 집, 고쳐 나가야 할 집 – 서울시립미술관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2021.06.26,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1845895&memberNo=2060019&vType=VERTICAL
[기획부터 전시까지, 지구를 위한 전시 방식]
1) 송희원, “기후위기 미술관서 체험한다...서울시립미술관 ‘기후미술관’展”, 불광미디어, 2021.07.29, http://www.bulkw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36488
[지속 가능 전시 도전한 부산현대미술관]
1) 김지윤, “기후 미술관, ‘제로 웨이스트’로 가다”, 단비뉴스, 2021.09.23, http://www.danb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4926
[기후 위기를 직면한 미술관의 미래 그리고 전시의 변화]
1) 조용직,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2021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본상”, 헤럴드경제, 2021.09.27,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210927000730
2) 서울시립대학교,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배형민 교수, 2021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본상 수상", 한겨레, 2021.11.22, https://www.hani.co.kr/arti/economy/biznews/10203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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